언젠가부터 들었던 생각이 있다.

​끌림은 느껴지는데 좋아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
이게 도대체 무슨 느낌인지 스스로 이해가 안 됐다.
끌리는데 좋아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지?
깊게 생각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은 그 사람과의 미래를 자꾸 그려보게 된다는 데서 오는 것 같다.
'끌림'자체가 그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
설령 그 끌림에 내가 이끌리고, 그 사람도 날 괜찮게 생각해 준다면 '사귐'이라는 단계에 도달은 할 수 있겠으나
그게 좋은 만남을 지속해 주는 근거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우리의 목적은 사귐이라는 단계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에 있다.

우리는 나와 정반대인 사람에 끌리기도 하고,
결이 같은 사람에 끌리기도 한다. 
과거엔 둘이 완전 극단에 서있는 말로 보였기에,
사람마다 모두 다양한 취향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두 가지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끌림과 좋아할 수 있음의 차이랄까?

내가 '끌림'을 느끼는 부분은
확실히 귀여움, 사랑스러움, 해맑음의 영역인 것 같다.
어떤 의도도 숨기지 않고 표정이나 표현에 마음이 훤히 드러나는 그들의 순수함에 내 내적 경계심이 무너지는 것 같달까?
나를 무장해제 시킨다는 말이 딱이다.
그 귀여움, 사랑스러움, 해맑음은 나에게 끌림을 주지만
그 끌림들은 나에게 관계의 지속성에 있어서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럼 '끌림'과 다르게 '좋아할 수 있음'은 무엇일까?
나에게 '좋아할 수 있음'이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같다.
의식적으로 나누는 대화에서도 
무의식으로 나누는 여백의 대화에서도
교집합의 포인트가 꽤 많은 그런 사람.
아무리 끌림을 주어도 보는 방향이 반대라면 우리는 반대로 걸어갈 수 밖에 없다. 가치관이 다르다면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어 있다. 관계를 위해 참을 뿐이다.
이해라는 말은 그것을 예쁘게 포장해주지만, 
참는다는 것은 결국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마음에 누적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임계점에 봉착하면 결국 터진다. 

나와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사람이라면 어떤 속도로 걸어도 상관없고 어떤 옷을 입고 걷던, 
어떤 걸음걸이던 상관없다. 즉 바라보는 곳 가치관이 같다면 그 사람의 성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그 해맑음, 귀여움, 사랑스러움이 다른 성향으로써 나에게 끌림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보는 방향이 같다면 잠시 싸우고 등을 돌리더라도,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게 되어있다.
결국 보고 있는 곳은 같은데 그 곳으로 향하는 모습이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니까 나에게 끌림은 성향의 영역이었다
나에게 있어 성향보다 더 중요한 건 
결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꽤 오랜 기간 남아있던 인지부조화가 
말끔히 해결되는 느낌이다.
가치관은 같되 성향은 다르다는 것.
그게 반대가 끌리는 이유, 결이 같음을 모두 포함한 말 아닐까?
나에게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은
결이 같을 때 그 사람의 성향이 어떻던 상관없다.
라는 말로 다가온다.
이런 사람과 티키타카 하는 맛에 한번 빠지면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이효리 이상순 커플 ,장항준 김은희 커플, 비포 시리즈의 커플이 그런 커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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